제주계록(濟州啓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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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편집]

『제주계록(濟州啓錄)』은 1846년 2월 26일부터 1884년 11월 6일까지 제주목(濟州牧)에서 조정에 보고했던 계문(啓文)을 1864년 이전에는 비변사(備邊司)에서, 이후에는 의정부(議政府)에서 베껴 쓴 자료집이다.

개관[편집]

조선시대 헌종(憲宗) 12년 2월 26일부터 고종(高宗) 21년 11월 6일까지 제주목(濟州牧)에서 조정(朝廷)에 보고했던 계문(啓文)으로 5책으로 이루어졌다. 5책의 내용별 번호가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 않으므로 책의 수록연대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제5책 : 헌종(憲宗) 12년(1846) 2월 4일 ~ 철종(哲宗) 9년(1858) 10월 2일

② 제1책 : 고종(高宗) 3년(1866) 8월 14일 ~ 동왕(同王) 9년(1872) 5월 26일

③ 제2책 : 고종(高宗) 18년(1881) 7월 9일 ~ 동왕(同王) 20년(1883) 5월 29일

④ 제4책 : 고종(高宗) 20년(1883) 7월 22 ~ 고종(高宗) 21년(1884) 1월

⑤ 제3책 : 고종(高宗) 21년(1884) 5월 ~ 고종(高宗) 21년(1884) 10월


철종(哲宗) 10년(1859)부터 고종(高宗) 2년(1865)까지 7년, 동왕(同王) 10년(1873)부터 동왕(同王) 17년(1880)까지 8년까지 총 15년간 분의 책이 유실되었다. 또한 권두서명(卷頭書名)은 비변사의 등록자에 따라 『탐영계록(耽營啓錄』, 『탐영별계록(耽營別啓錄)』, 『제주목별계록(濟州牧啓錄)』 등으로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사료된다.

내용[편집]

『제주계록(濟州啓錄)』에 수록된 계문은 19세기 제주도내 표류, 표도, 농사, 진상 등의 생활상과 함께 제주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수록된 계문을 내용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농사(農事)의 경우 봄 농사와 가을 농사의 작황과 추수 결과, 귤(橘)의 작황과 종류별 계수(計數) 내용, 농형(農形) 및 우택(雨澤), 기우제(祈雨祭)의 시행 등이다. 2) 진상(進上)의 경우 각종 귤의 천신(薦新)과 전궁진상(殿宮進上)의 수량, 부족한 수량에 대한 봉진 대책, 세초진상(歲初進上) 약재(藥材)의 봉진, 갑마(甲馬)의 봉진, 진상 관련의 대죄(待罪)에 대한 유지(宥旨) 등 진상에 따르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3) 해난사고(海難事故)는 외국에 표류(漂流)되거나 표류 도중에 외국 선박에 구조된 도민의 표류 경위와 생환 과정의 경위를 추고(推考)하고, 행방불명자(行方不明者)의 수색 및 익사자(溺死者)의 원휼전(元恤典) 지급 및 전교(傳敎)에 의한 환포탕감(還布蕩減)의 내용과 수량에 대한 대책들이다. 4) 외국선박의 표도(漂到) 및 내박(來泊)은 표류되어 온 외국 선박에 대한 대책과 문정기(問情記), 외국 선박의 어로(漁撈)와 통상(通商) 요구에 대한 처리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밖에도 5) 과거(科擧)의 실시 및 합격자 보고, 6) 관아(官衙)의 건물이나 성첩(城堞)과 무기(武器)의 정비에 다른 자세한 내용의 후록(後錄), 7) 산마감목관의 사임(辭任), 과만(瓜滿), 파출(罷黜)과 산장(山場)의 폐단에 대한 조처(措處), 8) 명월만호의 사직(辭職), 도임(到任), 추천(推薦), 9) 세 고을과 9진(鎭), 목장(牧場) 및 각 마을을 순행(巡行)한 내용이 수록되었다. 또한 진휼(賑恤)의 계획과 배순(背順) 내용, 판관(判官)과 현령(縣令)의 포상(褒賞)·처벌(處罰)·유임(留任) 등의 건의, 변방(邊防)의 사정을 보고하는 계문 발송 지체(遲滯) 원인, 전·후반기의 조방장(助防將)과 제색장관(諸色將官)의 포폄(褒貶), 군제(軍制)의 개편과 군사의 점고(點考), 전·후반기의 한라산신제(漢拏山神祭)를 비롯한 각종 제사의 시행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편집]

  • 『제주계록』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제주계록』 (제주발전연구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