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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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개요[편집]

연구목적[편집]

연구 목표[편집]

본 연구의 제목은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본 연구는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에 관한 자료 160종을 수집, 분석, 스캔하여, 자료의 원문을 입력하고, 현대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며, 본문 중의 모든 문맥 요소(Contextual Elements: 인명, 지명, 문헌명, 연호·연도·일자, 관서·관직명, 개념·용어, 등 텍스트의 문맥을 형성하는 키워드)를 추출, 의미적 관계망으로 재현함으로써 19세기 말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파견을 중심으로 한 한일외교사 및 그 시대 양국의 문화와 사회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연구의 결과물은 XML(EXtensibel Markup Language) 전자 텍스트 및 온톨로지(Ontology) 기반의 시각적 관계망 데이터베이스(Graph Database)로 편찬하여 온라인 상에서 활용·공유할 수 있도록 제출한다.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부터 1884년 갑신정변 사후 처리 시기까지 총 6회 메이지 일본에 파견된 조선의 사절단이다. 수신사(修信使)란 글자 그대로, 전통적 사대교린(事大交隣)에서 벗어나 근대적 만국공법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새로운 외교 형태를 준비하던 사절단을 일컫지만, 그 범위와 정의는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갑신정변 이후 파견된 서상우 사절단도 수신사에 포함시킬 것인지 논란이 될 수 있으나, 본 연구팀은 그 형태가 수신사와 상이한 조사시찰단을 포함한 ‘근대 전환기 조선 지식인의 신문물 수용’이라는 본 연구의 아젠다를 고려하였을 때, 공사 체제 이전의 서상우 사절단을 포함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들 사절단 뿐 아니라 유학생, 비공식 수행원 등 다양한 경로로 이 시기 일본에 건너가 근대문물을 접하였던 조선 지식인들의 활동 역시 본 연구의 취지에 부합하므로 이들 관련 자료도 본 연구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19세기 후반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의 활동에서 파생된 자료들은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 못하였다.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국역 해행총재(海行摠載)』에 수록된 4권의 사행록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조사시찰단의 경우에는 허동현이 영인한 『조사시찰단 관계 자료집』이 간행되었지만, 번역이 되지 않아 그 활용도가 적었다. 지난 5년 동안 본 연구팀은 ‘수신사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고 『조선후기 대일외교 용어사전』을 3년 동안 편찬하면서 자료조사 과정에서, 위의 기록들 이외에도 개인 사행록, 필담집, 한시 창화 기록, 서한(書翰), 한일 외교문서, 그림과 사진 등의 이미지 기록, 메이지 일본 신문 등, 훨씬 방대한 자료들이 국내외 각지에 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각 소장처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자료의 공개도 허락받았다. 본 연구팀은 이러한 목록을 명확히 정리하고, 목록의 전 자료를 수집하며, 원문ㆍ번역문ㆍ이미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출간하는 일이 매우 시급한 연구 과제라 생각한다.
현재까지는 몇몇 수신사행록과 등록류, 소수의 사행원들이 남긴 문집에 실린 사행 도중 지은 시문 등 일부 조선측 자료를 중심으로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의 모습을 연구해왔으나, 이러한 자료만으로는 근대전환기 조선 지식인의 신문물 수용 양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일부 급진 개화파를 제외하고 사절에 참여하였던 대부분의 조선 지식인은 성리학적 문인 관료였기 때문에 근대 문물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 것은 어려웠으며, 자신들의 기준으로 가감하여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고, 또한 조사시찰단 이후 사행단원의 수도 현저히 줄어 조선측 자료 자체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관계가 상호 수수관계라 한다면 이들 기록만으로 신문물 수용 양상을 온전히 추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사대교린 질서에 머물러 있었지만, 메이지 일본에서는 과거와 달리 예상 불가능한 변화들이 인간사의 전방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의 불균형적, 전환기적 특성으로 인해 본 연구는 더욱 새로운 자료가 요구된다. 따라서 본 연구팀은 수신사행원의 사행록과 조사시찰단원들의 시찰보고서 및 일기는 물론, 그들이 입수한 서양서적과 번역서 등의 조선측 자료와, 일본에 남아 있는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원과 일본인 간의 필담집을 비롯하여 일본 문인들의 문집에 남아 있는 창수시와 서한, 수신사행원들이 참석했던 흥아회 자료, 조선사절의 행적을 소개하였던 메이지 일본의 신문기사, 일본인들이 그린 조선사절의 그림과 사진, 일본의 외무성 기록과 조선 지식인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던 외국 공사의 기록 및 외국 신문 자료까지 관련 기록을 모두 집대성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근대 전환기 조선 지식인의 신문물 수용이라는 본 연구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팀은 지난 5년 동안 학위논문 집필 및 사전 편찬작업을 진행하면서 자료목록을 작성해 놓았다. 본 연구가 시작되면 별도의 준비기간을 보내지 않고 일본 현지 실사 작업을 수행하여 해당 자료를 복사하고, 이를 입력 및 번역하여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할 것이다. 또한 본 연구팀은 3년이라는 기간과 한정된 예산을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팀이 이미 산출했던 연구성과와 고전번역원 싸이트에 공개된 번역문 및 원문은 링크하여 제공하고자 한다.

연구 주제의 독창성[편집]

일본에서는 이 시기에 신문이 발행되었으며, 필담집과 서한 및 외교문서도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간 조선측 사행록과 시찰단 보고서를 중심으로 부분적인 연구를 진행했을 뿐이었다. 사행록이 귀국 후의 일방적인 기록이라면, 필담은 현장에서의 쌍방적인 기록이어서 지식의 수용 양상이 훨씬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본 내에 다양한 층위로 산재된 수신사 관련 기록들을 별도로 다루거나 조사하여 번역한 작업은 지금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본 연구팀의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은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기존 연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국내외에 산재한 자료를 최초로 집대성하여 번역한다. 현재 국내외에 남아있는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관련 자료는 매우 풍부하다. 일부 연구자에 의해 목록과 논문이 단편적으로 발표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이보다 더 많은 소장처가 조사 대상으로 남아 있고, 통합적 자료 정리와 입력 및 번역 작업이 전무하여 보다 세밀하고 본격적인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3차 조병호 수신사행처럼 아직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던 수신사나 조사시찰단의 총체적 활동 양상을 밝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층위의 자료를 통해 근대 전환기 조선인의 신문물 수용 양상이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된다. 사행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지식 교류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이 교류들은 일방적인 형태의 사행록이나 국왕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쌍방의 기록인 필담과 한시 창화, 시․공간을 극복한 서한, 사행지의 신문기사와 간접적인 서적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료는 지금까지의 종이책 출판이라는 방법만으로 연구하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개별 자료들을 연관된 하나의 역사적 장면에 모아 함께 분석하는 학제간의 심화된 연구도 가능해질 것이다.
셋째, 학제간 연구의 의의를 살려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다루게 될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관련 자료는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면서, 당대의 문화교류를 다양한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근대 전환기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시대적 고민과 인간적인 모습을 알 수 있기에 정치ㆍ경제ㆍ외교ㆍ문화ㆍ군사ㆍ과학ㆍ공업ㆍ상업ㆍ농업ㆍ어업ㆍ종교ㆍ역사ㆍ문학ㆍ철학ㆍ언어ㆍ의학ㆍ풍습ㆍ제도 등 근대 학문 체계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연구와 함께‘학제간 연구’에도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넷째, 미개척 연구분야를 선점함은 물론 앞으로 일본과의 연구 공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현재 극히 일부의 연구자를 제외하고, 메이지 초기 조선에서 파견된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지 않다. 본 연구팀의 성과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인터넷상으로 공개하면 양국이 더욱 활발한 공조체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그림ㆍ사진ㆍ글씨 등의 다양한 시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자료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2차적 활용도를 증진시키다. 그림이나 사진, 글씨 등은 번역하는 것보다 이미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연구진이 기수집한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관련 이미지 자료 및 신규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이미지, 국내외 타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이미지 등을 디지털화 하여 데이터베이스에 적재하고, 각각의 이미지가 자료 텍스트의 내용과의 적정한 연관성 속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저작권 사용 승인이 필요한 이미지에 대해서는 본 연구팀이 저작권 보유자로부터 본 연구결과물의 서비스 방식에 부합하는 저작권 사용 허가를 얻을 것이다.
여섯째, 연구팀의 기존 연구성과와 이미 공개된 자료들을 링크하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다. 연구책임자는 이미 몇 가지 자료를 번역하여 출판했거나 파일형태로 정리해 놓았고, 전임연구원도 일본에서 ‘수신사 연구’로 최초의 박사논문을 쓰면서 상당부분을 정리해 놓았다. 고전번역원 DB에도 몇 종의 수신사 일기가 번역되어 공개되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모두 링크하여 공개하면 예산과 기간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팀이 기획하는 데이터베이스와 차별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연구의 필요성[편집]

● ‘근대전환기 조선 지식인의 신문물 수용’에 대한 방대한 자료 구축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을 통한 근대전환기 지식 교류에 관한 연구가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검토가 되기 위해서는 양국의 상황을 모두 다룰 필요가 있다. 더구나 수신사행을 통한 교류는 모두 일본 내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일본 측 자료에 대한 비중도 적지 않다. 우리가 수용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확한 목록조차 파악되지 않은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관련 자료를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교류의 대상이 되었던 일본 지식인의 다양한 1차적 저작물을 신속하게 접함으로써 한일 근대 문물 교류에 대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 새로운 관점을 정립할 수 있다. 국내외 각지에서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자료의 실체를 확인하여 원전을 DB화하고, 성과물을 출판하는 일은 국학고전연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작업이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현재 본 연구팀의 예비조사 결과, 160여 종의 다양한 자료를 수집, 정리해야 한다. 이 자료들 외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자료도 일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연구의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각 도서관의 수신사 관련 고서목록 수합과 현지답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 학제간 연구의 토대 자료 제공
본 연구는 최근 학제간 연구 추세에 부응하는 국학 연구의 본보기로 기능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 학문체계의 장벽이 사라지고 학제간 연구가 활발해지는 추세이다. 이에 부응하여 국내외의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자료를 집대성함으로써, 연구자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근대 지식인의 신문물 수용과 한일 교류의 역사적 실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후속세대를 위해서 그리고 학문적 역량을 기르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의 근본적인 파견 목적은 여러 분야의 근대문물을 견문하는 것이었던 만큼, 인원의 구성도 다양하였고 자료의 내용도 광범위하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공업, 상업, 풍습, 복식, 음식, 제도, 의학, 과학, 기술, 통신, 군사, 세관, 농업, 문학 등 당대의 문화사 및 사회․경제사를 총망라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팀은 이러한 자료의 원문과 번역본의 출판을 통해 학제간 연구에 기여함은 물론, 전체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병행하여 성과물의 활용도를 높이고 일반 대중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통한 자료 확충
본 연구팀의 전임연구원은 일본 최초로 수신사 연구 박사논문을 쓰면서 개인 비용으로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고, 연구책임자도 통신사 기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에 수신사 기록을 수집하여 일부 번역 출판하거나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집대성하기에는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한계가 있다. 일부 사행록은 공개되었지만, 양국 지식인들의 필담창화집, 외무성 자료, 각종 신문 및 잡지류 등은 현재 일본 각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를 위해 개별적으로 방문하여 고가를 지불하고 입수하거나, 우편으로 입수하였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 수집과 번역을 개인이 진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자료 확보와 번역,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 지식정보 데이터베이스 모델 제시
최근에 인문학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라는 연구가 많이 수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인문학자가 제출한 연구성과를 인문정보학자가 DB화하는 형식상 공동연구였다. 인문학자가 번역과 DB 편찬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한국학․동양학 분야의 선도적인 시맨틱 웹 데이터베이스 편찬 연구 방법론을 확립하여, 이 분야의 지식정보 데이터베이스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 한일외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에 기여
한일외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에 근대식 외교의 출발인 수신사 기록을 집대성할 필요가 있다. 통신사가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전달한 측면이 있다면, 수신사는 우리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한 세기 전의 외교수립 과정의 자료를 집대성하면 현 상황의 타개방안도 도출될 것이다.

선행연구와의 비교[편집]

지금까지의 한일관계 연구는 주로 조선통신사에 집중되었다. 우리 연구팀은 전근대시기의 자료인 통신사 필담창수집을 수집하고 원문을 입력․번역하여 30권을 이미 출판하였고, 마지막 20권이 편집중에 있다. 이 연구 성과는 현재 연구에 활용되고 있고,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도 동아시아 필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아를 바탕으로 하여 통신사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과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는 근대전환기 한일 교류의 연구, 특히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에 관한 연구는 한국과 일본에서 활발히 연구되지 않았거나, 연구되었다 할지라도 특정 시각에서 행해지곤 하였다.
일본에서는 식민지시대에 제국주의 관점에 맞추어 수신사 연구가 진행되거나,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2차대전의 종식 후 고증적인 방법에 따라 한일관계사가 새롭게 다루어지기 시작했으나, 근대전환기 일본의 관심은‘서양인이 본 메이지 일본’이었기에 그 외의 시선에 대해선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편향적 연구 시각은, 메이지 일본의 시대적 가치를 서구식 근대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하는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며 이는 오늘날 일본이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에서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에 관한 연구는 자료집성과 내용 연구의 측면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내용에 대해서는 1970년대에 조항래가 정치외교사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1990년대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통신사 연구의 연장 개념으로 시도된 측면이 있으며,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탓인지 그 성과는 많지 않다. 수신사의 견문 이후에도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진 이유로 사행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나 무지(無知)를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구문명을 적극 수용하였던 일부 개화파들의 이후 친일적 행보를 비판하는 등 그 시선이 민족주의적이거나 근대지향적으로 편향되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다행히 최근에는 각 수신사의 근대 견문이나 수용 태도, 사행 이후 조선에 미친 영향 등이『국역 해행총재』자료를 중심으로 단편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또한 허경진․조영심은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朝鮮國修信使金道園關係集』을 통해 개화기 수신사의 창화시 연구를 심화시켰고, 최근 일본에서 이효정이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학위논문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朝鮮修信使の來日記錄硏究」國際基督敎大學 博士學位論文, 2015.) 전반적인 연구 실정은 여전히 미진한 실정이다.
자료 집성 측면에서는 허동현이 조사시찰단을 본격 연구하『조사시찰단관계자료집』( 국학자료원, 2000)을 영인 출판하여 연구의 지평이 넓어졌다. 하지만 조사시찰단 자료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마저도 빠진 자료가 몇몇 있는 것을 본 연구팀이 확인하였다. 또한 번역이 되어 있지 않고 색인 목록이 없어 검색에 어려움이 있는 까닭에 대중적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하였다. 본 연구팀은 이에 종이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미지까지 활용한 데이터베이스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편집]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과 관련된 연구는 아직 기틀을 다져나가는 단계이다. 현재의 초기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한일간 공식적인 외교 관계사 자료에만 치중한 연구 편향에서 탈피해야 한다. 『국역 해행총재』소재의 사행록에 집중된 선행 연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의 수신사 연구는 조일수호조규(1876) 이후 변화된 한일 외교관계나 혹은 몇몇 수신사행록 저자 개인의 이국체험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대전환기 조선 지식인의 신문물 수용 양상을 파악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우선 사행록, 시찰기, 보고서 뿐 아니라 일본 측의 필담창수집, 서한, 외교문서, 신문기사를 비롯한 그림/사진 등의 다양한 층위의 자료까지 발굴하여 원문과 번역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토대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한일교류에 큰 축을 차지했던 지식인 개인간의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특히 양국 교류를 다루면서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을 각각의 균질적인 집단으로 다루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선측 사행단은 조선통신사 시절과는 달리 개화에 대해 다양한 사상적 편차를 지니고 있었고 신분도 다양하였다. 이들이 만난 일본 지식인들 역시 사상과 신분 면에서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양국 지식인을 통한 신문물 교류를 면밀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있는 필담집, 서한, 신문기사 등도 연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셋째,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에 관한 연구가 심화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까지 수신사 연구는 개별 수신사행에 집중되어 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시적이면서 총체적인 연구가 행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접근 가능한 관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기존의 편향적 연구 성과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근대전환기 문물 수용을 조망할 수 있는 총괄적 연구의 토대를 세우고,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 편의에 일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넷째, 조선측 자료 연구 편중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을 통한 신문물 수용에서 견지해야 할 가장 큰 전제는 양국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점이다. 양국의 교류 양상이 어느 한쪽의 자료로만 밝혀질 수는 없다. 특히, 이 시기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근대화론의 측면에서 조선에게 불공평하게 작용하였지만, 이미 근대를 지나온 포스트모던의 현시점에서 이러한 관점은 다양한 층위의 자료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또한 상대국인 일본 지식인의 기록을 비롯하여 그들의 대조선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함께 다루어 균형잡힌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한일간의 왜곡된 역사의식을 바로잡고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들게 될 것이다.
본 과제는 기존의 편향적 연구 성과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근대전환기 지식 수용을 조망할 수 있는 총괄적 토대 연구이다. 사행록, 필담, 한시창화, 서한, 신문기사, 외교문서, 그림 및 사진 등 다양한 층위의 기록들을 집대성하고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공개하면 한국학 분야의 외국 연구자들에게도 공동연구의 장을 펼칠 수 있다. 한문/일본어/조선어로 된 원전을 사진 찍어 이미지 데이터로 만들고, 원문을 입력한 다음, 한글로 번역하면,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데이터베이스는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 학자도 다양한 검색 방법을 통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언어가 다른 여러 나라 학자들의 연구에 일조하고 한국학 연구의 역량 축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방법 및 내용[편집]

개요[편집]

연구팀 조직도[편집]

연구진행 흐름도[편집]

연구방법[편집]

단계별 연구절차 및 내용[편집]

연구결과 활용방안[편집]

해제집 및 번역본 발간[편집]

해외 한국학 관련 대학 및 연구소에 대한 자료 지원[편집]

학술대회[편집]

참여 연구진[편집]

연구책임자[편집]

허경진

공동연구원[편집]

김현
정재현

전임연구원[편집]

이효정
윤현숙

연구보조원[편집]

김누리
류인태
박혜민

외부번역자[편집]

구지현
최이호
황수연
조기영

연구 수행일정[편집]

2015. 09. 23 / 1차 모임 : 사업 내용 공유 및 연구자별 기본 번역 항목 분류.
2015. 10. 13 / 연구재단 : 2015년도 토대연구지원사업 결과물 DB제출 가이드 설명회 참가.
2015. 10. 14 / 2차 모임 : 1차 번역물 검토 및 번역지침과 주석처리방안 그리고 해제기준 마련에 대한 논의.
2015. 10. 28 / 3차 모임 : 서정문 선생님의 집단 번역에 대한 강연1.
2015. 11. 11 / 4차 모임 : 서정문 선생님의 집단 번역에 대한 강연2.
2015. 11. 25 / 5차 모임 : 번역내용 검토 및 수정.
2015. 12. 23 / 6차 모임 : 번역내용 검토 및 수정.
2016. 01. 06 / 7차 모임 :

연구 및 번역 자료목록[편집]

총람[편집]

연번 자료명 유형 맥락 편저자 언어 면수 면당 행수 행당 행수 총 글자수 문건수 번역시 예상 글자수 번역시점 번역자
001 『日東記游』 사행록 1차수신사 김기수(金綺秀) 한문 284 10 20 56,900 해당사항없음 대략 20만자 미정 미정
002 『修信使日記』 사행록 1차수신사 김기수(金綺秀) 한문 32 16 38 19,456 해당사항없음 대략 7만자 미정 미정
003 『滄槎紀行』 사행록 1차수신사 안광묵(安光黙) 한문 130 12 22 34,320 해당사항없음 대략 12만자 2015년 10월 구지현
004 『航韓必携』 일본응접자료 1차수신사 坂田諸遠 한문과 가나 720 10 20 144,000 해당사항없음 대략 50만자 2015년 10월 이효정
005 『朝鮮応接記事』 일본응접자료 1차수신사 알 수 없음 한문과 가나 64 10 20 12,800 해당사항없음 대략 5만자 2015년 10월 이효정

유형별[편집]

사행록
보고서
일본응접자료
외교문서
일본신문
일본잡지
필담록
서한 및 수창

맥락별[편집]

1차 수신사
2, 3차 수신사
조사시찰단
4차 수신사
5차 수신사
기타

언어별[편집]

한문
가나
한문과 가나 혼용

해제작성 참고맥락[편집]

● 해제작성 지침[편집]

1. 해제작성 기본항목[편집]

○ 기본서지(표제사항, 판사항, 발행사항, 형태사항)
○ 저자
○ 구성
○ 내용
○ 가치

2. 해제작성 분량[편집]

대략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3. 해제작성 참고도서[편집]

연세대 국학연구원 편, 『고서해제』, 평민사, 2004.

해제작성 예시: 『朝日稅議』[편집]

1. 기본서지(표제사항, 판사항, 발행사항, 형태사항)[편집]


<표제사항>
○ 원서명: 朝日稅議
○ 현대어서명: 조일세의
○ 표지서명: 朝日稅議 (右側上段에 ‘浣西隨筆’이 표기되어 있음)
○ 卷頭書名: 辛巳新擬海關稅則

<판본사항>

筆寫本

<발행사항>
○ 간행지: 未詳.
○ 간행자: 未詳.
○ 간행연도: 高宗18年(1881)

<형태사항>
○ 책권수: 1冊(12張)
○ 책크기: 22.2×14.9cm
○ 표기문자: 漢文

2. 저자[편집]

조병호(趙秉鎬)

3. 구성[편집]

○ 海關稅則
- 進口稅則 6個條
- 出口稅則 1個條
○ 新修通商章程草案
- 35個條

4. 내용[편집]

책의 내용은 크게 海關稅則과 新修通商章程草案,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海關稅則은 원제가 “辛巳新擬海關稅則”이다. 1881년 조선 정부가 獨立收稅權에 기초하여 海關을 설치하고 關稅를 징수할 것을 내세우며 일본과 교섭하기 위하여 작성한 海關稅則의 초안이다. 서두에는 5년 간 일본과 통상 교류를 시행해오면서 양국의 무역 규모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設關課稅를 시행하지 못하였음이 서술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주적 수세권에 기초하여 稅則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언표되어 있는데, 進口稅則 6개조‚ 出口稅則 1개조가 수록되어 있다. 進口稅則은 화물을 수입할 때 적용되는 세칙으로 船裝具‚ 酒類 등 5개 품목에 적용되는 세액이 규정되어 있으며‚ 出口稅則은 화물을 수출할 때 적용되는 세칙으로 모든 화물에 동일한 세액을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新修通商章程草案은 1876년에 체결한 통장장정의 개정 초안이다. 일본에 파견된 조병호 등이 일본정부와 교섭하여 1881년 12월 通商新約을 작성한 것으로, 모두 35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5. 가치[편집]

1881년(고종 18) 봄 조선 정부는 일본과의 통상 교류에 있어서 자주적 수세권을 확보하기 일본 공사 花房義質과 교섭을 시작하였다. 당시 花房은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라 표명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였는데, 이 때문에 조선 정부는 1881년 信使 趙秉鎬 등을 일본에 파견하여 교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 책은 당시 조병호 등이 교섭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에 전달한 문서인 海關稅則과 新修通商章程草案를 묶어 필사한 것이다. 예컨대 책의 표지에 "浣西隨筆"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은 필사자와 관련된 정보로 판단된다. 이 초안과 관련하여 1881년 봄 일본 공사 花房義質이 보낸 의견서는 ≪通商新約附箋≫에 수록되어 있으며‚ <通商新約>에 대한 조선 측의 의견서는 ≪通商新約附箋條辨≫에 수록되어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1876년 소위 ‘조일수호조규’로 알려져 있는 강화도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조선은 일본과 대등하지 못한 관계로 통상 교류를 하게 되었다. 당시 체결된 12개조 가운데서도...(미서술)


주석작성 참고맥락[편집]

● 주석작성 지침[편집]

● 주석작성 예시[편집]

번역관련 참고맥락[편집]

● 번역관련 지침[편집]

○ 시간
○ 장소
○ 인물
○ 사건
○ 물품

● 번역관련 건의[편집]

○ '시간'과 관련하여

▶ 시간(간지, 시간) 표기 방식에 대한 통일안.
▶ 일월자(음력, 양력) 표기 방식에 대한 통일안.
▶ 연호(메이지의 경우 서력 표기) 표기 방식에 대한 통일안.
▶ 시기(강호시대 or 에도시대와 같은...) 표기 방식에 대한 통일안.

○ '장소'와 관련하여

▶ 여관, 공장, 학교, 항구, 역원 등등 장소를 어떻게 범주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필요.
▶ 건물명의 경우 장소로 볼 것인가?
▶ 관청명의 경우 장소로 볼 것인가?
▶ 자연지명과 행정지명으로 나누어 장소를 범주화한다고 했을 때, 행정지명의 경우 근대화 이전과 근대화 이후가 다른데(1871년을 기준으로 행정지명 기준이 바뀜. 번이 없어지고 현이 생겨남) 이것을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

○ '인물'과 관련하여

▶ 이름에 대한 표기 표준안 마련할 필요. 예) 이름, 자, 호, 초명(아명), 통칭(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아버지의 호칭을 물려받음), 개명(일본 사람들의 특이한?), 계명(戒名)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경우 은퇴하면서 계명(그럴싸한 사회적 이름)을 가짐
▶ 일본 발음, 한자 병기에 대한 표준안 고민 필요.
▶ 인물과 관련된 가문의 정보는 어떻게 표준화 할 것인가?
▶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정보와 관련하여, 신분의 경우 메이지 이후 적용되지 않아서 아마 거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관직을 중심으로 정리하되, 관위는 품계(지정주체에 따라 관위가 여러 가지 존재)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정보들을 어떻게 표준화된 형태로 나타낼 것인가?

○ '사건'과 관련하여 ○ '물품'과 관련하여

수신사DB 번역 분담내용[편집]

● 번역시기별 : 2015년 10월 1차자료 선정[편집]

사행록: 『滄槎紀行』, 『朝鮮国修信使金道園関係集』, 『十一行中同行錄』, 『日行日記』, 『日行見聞錄』, 『談草』, 『日東錄』, 『東京日記(宋憲斌)』, 『東京日記(李元會)』
일본응접자료: 『航韓必携』, 『朝鮮応接記事』
필담록: 『公私問答』
보고서: 『修信文蹟(修信便別單)』, 『朝日稅議』, 『居留條例』, 『聞見事件(奎1311-3)』

● 번역자별[편집]

구지현
류인태
박혜민
이효정
최이호

수신사DB 용어사전 표제어 모음 (유형별/가나다 순)[편집]

● 인물[편집]

○ 변택호(邊宅浩, ?~?)
○ 조병호(趙秉鎬, 1847~1910)
○ 김홍집(趙秉鎬, 1847~1910)

● 기관[편집]

○ 공부성(工部省)

● 문헌[편집]

○ 동경일기(東京日記)

● 물품[편집]

○ 아마기함(天城艦)

● 제도[편집]

○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

● 개념[편집]

○ 전권자거(全權字據)